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
국립중앙박물관, 지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오세아니아 문화를 처음 조망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 소장 유물을 통해 오세아니아 문화를 살펴보다.
[서울문화인] 인간은 대륙뿐만 아니라 거대한 바다에 배를 띄우고, 섬을 찾고, 그곳에도 자신의 뿌리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약 6만 5천년 전, 아시아에서 태평양에 흩뿌려진 수많은 섬에서 정착하여 창조한 예술과 문화 전체를 ‘오세아니아’라 부른다. 지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오세아니아는 바다 그 자체가 삶의 터전이자, 섬과 섬을 잇는 바다가 곧 문명과 문화를 만드는 연결망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이 지난 4월 30일(수)부터 특별전시실2에서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관장 에마뉘엘 카자레루)과 공동으로 국내 최초로 오세아니아 문화권을 소개하는 특별전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13년 ‘콩고강-중앙아프리카의 예술’ 특별전에 이어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과 두 번째 협업 전시이다.
신화와 조상을 예술로 되살리는 방식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오세아니아 역시 예술이 지닌 역할과 의미는 다양하지만, 환경 위기 시대에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바다를 신성하게 여기고 모든 존재를 동반자로 삼는 전통적 세계관은 기후 변화로 위기를 맞은 오늘날 인류 공동체에 지속 가능한 삶의 지혜를 일깨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바다가 섬과 섬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듯, 오세아니아의 예술은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 서로 다른 문화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듯 전시를 기획한 국립중앙박물관 백승미 학예연구사는 “이번 특별전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는 메시지로 단순히 이국적인 예술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해 예술적 통찰과 예술이 개인의 표현을 넘어 사회적 연대와 책임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상기해 보는 전시이다”고 말했다.
<마나 모아나Mana Moana>는 이번 전시 기획 의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폴리네시아어로 ‘마나mana’는 모든 존재에 깃든 신성한 힘을, ‘모아나moana’는 경계 없는 거대한 바다를 뜻한다. 이 두 단어를 결합함으로써 오세아니아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세계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경외와 바다의 신성함’을 응축해 전달한다.
이번 특별전은 ‘바다’라는 공간, 그리고 항해와 정착의 과정(1부)에서 시작해 멜라네시아(2부)와 폴리네시아(3부)의 이야기로 차례로 펼쳐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에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섬 문화와 문화 정체성(4부)을 조망하며 마무리한다. 또한,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18세기~20세기의 유산 171건과 현대 작가 작품 8점을 통해 전통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예술의 다층적 면모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것을 보여준다.
에마뉘엘 카자레루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장은 “한국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심미적 특성과 인류학적 의미에 따라 선정되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18여 건의 작품들을 통해 오세아니아의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고, 땅과 바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지역 주민들의 창의성과 인간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딛고 이루어낸 불안한 균형뿐만 아니라 우주와 하나가 되는 능력, 주변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쉴 때 이들과 창의적으로 소통해 온 인간의 저력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고 밝혔다.
(제1부 물의 영토) 오세아니아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섬들의 세계다. 바다는 이곳 사람들에게 단순한 지리적 경계가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공간이자 삶의 기반이다.
1부에서는 바다를 길로 삼아 이동하고 정착한 오세아니아인들의 항해와 세계관을 조명한다. 수천 년에 걸친 이동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정교한 항해술, 카누 제작 기술, 신화 속 창세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모아나’로 상징되는 신성한 바다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경사지게 놓인 카누는 항해와 정착의 순간을 보여주며, 신화와 상징을 새겨 항해의 안전, 전쟁의 승리 등을 기원했던 다양한 카누 장식은 바다 위의 섬처럼 펼쳐져 오세아니아의 지리적 특징을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문화적 상상력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 공간은 오세아니아 예술과 철학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제2부 삶이 깃든 터전) 멜라네시아 지역은 다채로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문화 다양성을 지닌 곳이다. 이곳 공동체는 자연과 조상을 하나의 세계로 인식하며 공동체와 영적 질서의 상징으로 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제2부에서는 멜라네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조상 숭배와 신성한 공간, 권력과 교환 의례 등 공동체 중심의 세계관을 선보인다. 대형 의례 공간인 ‘남자들의 집’, 소년들이 성년식을 치를 때 쓰는 조상의 얼굴, ‘므와이’ 가면, 전쟁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신성한 힘을 가진 방패 등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시각화하며 예술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영적인 중심 역할을 해왔음을 드러낸다. 이 공간에서는 오세아니아 예술이 삶과 공동체, 신성함의 삼중 구조 속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해 왔음을 발견할 것이다.
(제3부 세대를 잇는 시간) 폴리네시아 지역은 광활한 해역을 넘나드는 항해의 문화권이자, 조상과 신화적 시간에 대한 인식이 깊게 자리한 세계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과거는 눈앞에 있는 것이며, 알 수 없는 미래는 등 뒤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간 개념과는 정반대다. 그들에게 시간은 단선적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으로 세대 간의 기억이 끊임없이 공유되는 흐름이다.
제3부는 조상 숭배와 신화, 마나mana와 타푸tapu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시간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살펴보는 공간이다. 연옥으로 만든 목걸이 헤이 티키는 마오리족에게 혈통과 생명력의 상징이다. 전설 속 최초의 인간이자 조상의 모습으로 착용한 사람은 명예와 권위의 마나(힘)을 갖게 되고 조상의 기억을 품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 때, 남성은 전쟁에 나설 때 착용하며 가보로 대대손손 물려주었다. 조각상, 제의용 장신구, 직물 또한 조상의 존재를 드러내고 예술은 신과 인간, 삶과 죽음을 잇는 매개체가 되었다. 여성이 제작하는 직물, 타파는 세대 간의 기억을 담는 문화적 실천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세아니아 예술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의 흐름이다.
(제4부 섬... 그리고 사람들) 오세아니아 예술의 정수는 ‘몸’과 ‘삶’에 스며든 장신구와 공예에 있다. 장신구는 자신을 꾸미는 도구이자, 신분과 정체성, 신과 자연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이다.
제4부에서는 오세아니아의 장신구와 공예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 공동체의 미적, 상징적 관계를 탐구한다. 자개, 깃털, 고래 이빨 등 자연의 재료로 빚어진 현대의 장신구는 정교한 기술과 미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착용하는 사람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관계성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장신구와 공예품 사이에서 오세아니아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우주를 향한 감각과 ‘사람’이라는 렌즈를 통해 오세아니아의 철학을 응시해 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14일(일)까지 진행되며, 입장료는 5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