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조선의 병풍과 활옷 국내에서 보존처리하고 공개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지원 프로그램 전시
[서울문화인]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平安監司道科及第者歡迎圖)》 8폭 병풍과 <활옷>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사장 김정희, 이하 국외재단)은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에 의해 보전처리를 마치고 3월 11일부터 4월 6일까지 리움미술관 M1, 2층에서 공개된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은 1799년 200여 명의 무역선 선장과 선주로 구성된 동인도해운협회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시에 세워진 민속박물관으로 미국 내 가장 오래된 박물관 중 하나다. 이곳에는 1,800점 이상의 한국 유물이 소장되어 있으며, 2003년부터 단독 한국실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세계박물관 가운데에도 한국실이 중국실보다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한국 문화유산의 연구와 전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883년, 조선이 미국에 처음 파견한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에는 개혁 사상가이자 정치가로 성장한 유길준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사절단이 귀국한 후에도 미국에 남아 문화와 제도를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피바디에섹스박물관 관장 에드워드 실베스터 모스(Edward Sylvester Morse, 1838~1925)의 조언과 지원을 받았다. 미국이 조선과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은 직후인 1883년 모스 관장은 고종황제의 고문인 독일인 파울 게오르그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1848-1901)로부터 한국 유물 225점을 사들였다. 유길준은 모스 관장을 도와 이 유물을 분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유길준이 기증한 유물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보존처리 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병풍, 19세기, 견본채색(비단에 채색), 전체 (폭)507.2×(높이)170.6cm, 각 화면 (폭)58.6×(높이)128.8cm, 1927년 W.C. 엔디코트와 조지 피바디 기금으로 구입,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먼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는 1826년 평안감사가 평안도 도과 급제자를 축하하여 베푸는 연회를 그린 8폭 병풍 그림(19세기 作)으로 도과(道科)는 조선시대 왕의 특별한 명령으로 각 지방에서 지방 관찰사가의 주관으로 실시한 특수 과거(科擧)로 1838년(헌종 4)에 함경별시가 함경도과로, 1866년(고종 3)에 평안별시가 평안도과로 각각 명칭이 변경된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함경도과, 평안도과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되었다.
이번에 보존처리 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후 30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것으로 1994년 전시 당시에는 제작 당시의 원래 장황 형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낱폭으로 분리된 상태의 패널 8폭을 임의적 순서로 배열하여 공개되었다. 특히 병풍 화면에는 글씨가 전혀 없고 그림의 내용을 파악하거나 제작 시기에 대해서도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근거를 바탕으로 도과급제자를 환영하는 기록화임을 재확인하고, 그림의 순서를 재배열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당시 그림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어 《평안성도》라고 불리어졌으나, 이번에 보존처리를 진행하면서 이 병풍이 평안감사가 도과 급제자를 위해 벌인 대동강 선유(뱃놀이) 축하 행사를 한 폭에 한 장면씩 시간 순서대로 그린 행사기록화임을 확인하고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라고 명칭을 찾게 되었다.
이 병풍은 19세기 전반 도화서에 만연해 있던 김홍도 화풍과 유사하다. 사실에 기반한 관청 의례, 서민의 일상, 평양의 풍속과 풍물에 대한 세부 묘사가 매우 치밀하다. 악기나 의장기에는 금칠이 뚜렷하게 확인되어 고위 관료의 주문작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8폭 명풍에는 약 2천여 명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2023년 11월 국내로 반입된 후, 2025년 2월까지 약 16개월간 보존처리를 진행하였다. 보존작업 전, 병풍은 8폭의 화판으로 분리된 상태였으며, 1994년 국내 공개 이후 충해(蟲害, 벌레먹음)로 인한 결손(1만여 곳)이 많았고 특히 가장자리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또한, 화면 전면에 꺾임, 갈라짐, 오염 등 다양한 손상이 확인되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실시한 전문적인 상태 조사를 바탕으로 안료 안정화, 화판에서 그림 해체, 구배접지 제거, 화면의 기울기 및 높낮이 조정, 결손부 메움, 병풍 틀 제작 등의 과정을 통해 보존처리를 진행하였다.
보존처리 결과, 그림 속 인물의 복식, 시간의 흐름에 따른 폭별 색감의 변화 등 보존과정에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잃어버렸던 그림의 순서를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낱장으로 보관되어 있던 그림을 원래의 병풍 장황으로 복원되었다. 특히 보존처리 과정에서 비교할 수 있는 그림이 없어 그림의 순서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류문형 삼성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삼성문화재단은 고 이건희 선대회장께서 1989년에 국내 사립미술관 최초로 보존연구실을 설치한 이후, 우리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처리 기술과 연구를 위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보존ㆍ복원기술을 축적해 왔다. 앞으로도 해외에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최상의 상태로 복원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1965년 설립된 삼성문화재단은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89년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을 설립하였다. 2022년 9월 국외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국외소재 한국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을 하고 있다. 이번 보존처리는 사립 미술관이 국외소재 한국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한 최초의 사례이다.
<활옷>, 18-19세기, 비단에 자수, (화장)94.5cm, (길이)128.4cm (품)45.4cm, 1927년 야마나카상회 기증,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이어 <활옷>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예복 중 하나로 19세기 말부터는 왕실뿐 아니라 사대부가와 평민 여인들이 모두 입었던 전통 혼례복이다. <활옷>은 신부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옷이기도 하지만 신랑과 신부가 만나 자식을 많이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오랫동안 해로하기를 바라는 자수 무늬로 가득 차 있다.
현재 국내에 30여 점, 국외에 20여 점 등 50여 점의 <활옷>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하나가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피바디에섹스박물관 <활옷>은 1927년 야마나카상회가 기증한 유물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2023년 11월 국내로 들여와 2024년 11월까지 약 13개월간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하였다. 처리 전 상태 조사를 통해 형태, 구성, 직물, 색상 등 재료와 제작 방법을 조사하여 보존처리를 진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활옷은 현존하는 다른 활옷 유물과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이 고쳐가며 사용했던 흔적을 발견하였다.
보존처리를 위해 소매에 부착된 한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추수기(秋收記, 경작지의 추수에 대해 기록한 문서)가 확인되었다. 그 내용은 ‘金浦古縣內郡內兩面奴甲福秋收記 戊寅九月 日’으로 김포 지역 노비 갑복(甲福)의 추수기 일부이다. 기록된 무인년은 1818년, 1878년, 1938년 중 하나로 추정되나, 정확한 연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추후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소매를 분리한 길의 겉안감 사이에도 여러 겹의 한지가 심지로 사용되었다. 그 중 일부는 낙복지(落幅紙, 과거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인 것으로 조사되어 궁중에서 사용되다가 민간으로 전수되어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보존처리 결과 일부 가려진 자수도 찾아낼 수 있었다. 활옷 본연의 바탕색인 대홍색과 연꽃, 모란, 봉황, 나비 등을 섬세히 묘사한 궁중 자수 기법을 되살린 온전한 조선 왕실 여성 혼례복 활옷이 재탄생되었다.
이렇게 되살아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병풍과 <활옷>은 다가오는 5월에 재개관하는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의 한국실(Yu Kil Chun Gallery of Korean Art and Culture)의 주요 작품으로 전시될 예정이여서 국내에서는 약 4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공개된다. 전시장에는 보전처리 된 두 유물은 물론 보존처리 과정을 담은 영상과 터치스크린를 통해 이미지를 디테일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국외재단은 오는 3월 11일에는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병풍과 <활옷>의 보존처리 성과와 학술적 의의를 조명하는 심포지엄을 리움미술관 강당에서 개최한다.
김정희 국외재단 이사장은 “재단은 현재까지 10개국 30개 기관을 대상으로 58건의 사업을 지원하여 우리 문화유산이 현지에서 전시되거나 활용되도록 했다. 재단은 앞으로도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이 보다 온전히 보존되고 현지에서 널리 소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