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인] 지난 2020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를 소개하는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특별전이 진행되었다. 우리가 풍속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나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을 떠올린다. 또한 이 두 화가는 조선시대 그 어느 화가보다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풍속화하면 단원이나 혜원만이 풍속화만 기억하던 나에게는 조금은 생소했지만 그 방대함과 다양함에 놀랐다. 그래서 당시는 소개하지 못한 18세기 후반 조선의 풍속을 그려낸 기산의 풍속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 생몰년 미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가로, 부산의 초량을 비롯하여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활동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인 『텬로력뎡』(천로역정, 天路歷程)의 삽화를 그렸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기산의 그림은 예술적으로는 분명 단원이나 혜원에 미치지 못하여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화가이지만 그는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 전 분야의 풍속을 그려내어 그림 주제가 다양한데다가 대부분 인물과 배경이 함께 그려져 있어 예술적·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미술사, 민속학 등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그동안 일반인들은 왜 그에 대해서 알 수 없었던 것일까 그가 그려낸 1,500여 점은 당시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 등 외국인에게 많이 팔려나가서 현재 독일, 프랑스 등 유럽과 북미 박물관에 주로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이 외국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기산의 그림 그리는 방식이라 말한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당시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아마도 당시 이름난 화원들이 그려낸 작품은 그 수량도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눈에 비쳐진 이국적인 조선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기에는 부족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현재 파악되는 기산의 풍속화는 1,496점에 이르며, 당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개한 기산 풍속화는 프랑스 국립기메박물관 소장품(모사본) 87점(기메박물관 총 소장본은 170점), 독일 MARKK(구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품 79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 28점 등 총 186점이었다.
기메 소장품을 전체적으로 분류하면, 생업 28점(농업12, 상업16, 수공업29, 기타7), 사회생활 29점(형벌, 교통 운송, 과거, 천민 등 다수), 의식주 31점(의생활19, 식생활8, 주생활4), 일생의례 17점(상례 다수), 놀이와 여가 21점, 전문예인 8점, 세시풍속 11점, 종교와 신앙 10점 등이다. 대체로 생업, 사회생활, 의식주, 일생의례, 놀이, 세시, 민간신앙의 전 분야에 고루 나타난다. 일생의례에서 상례가 다수를 차지하며, 전문예인에서 탈춤이 상세하지만, 기녀에 대한 그림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그림들은 당시 조선을 여행한 프랑스 샤를 바라(Charles Louis Varat, 1842∼1893)에 의해 수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MARKK(구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품은 79점이 전시되어 모든 작품이 전시되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분류하면 생업 15점(농업 3, 상업 3, 수공업 9), 사회생활 18점, 의식주 29점(의생활 19, 식생활 8, 주생활 2), 일생의례 6점, 놀이와 여가 17점, 전문예인 16점, 세시풍속 6점, 종교와 신앙 5점 등이다. 여기에는 일부 중복 분류도 포함되어 있다. 수공업은 각종 장인들 위주이며, 의식주에서는 의생활이 다수이다. 소장품의 특징을 보면, 의식주, 놀이, 전문예인(기방), 종교(불교) 분야가 중심이다. 그런데 생업이 적고, 사회생활의 과거시험⋅천민생활, 일생의례는 매우 드문 편이다. 그 그림들은 독일인 마이어(H. C. Eduard Meyer, 1841~1926)가 운영하던 인천 세창양행을 통해 수집되었다. 마이어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으로, 1884년 인천 제물포에 개설한 마이어양행의 지점인 세창양행을 통해 독일, 네델란드 등지의 유럽으로 기산 풍속화를 반출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 28점 또한, 2019년 수집한 그림으로, 놀이와 세시 7점, 생업 6점, 의생활 5점, 종교 2점, 일생의례 4점, 사회생활(형벌과 행차) 4점 등 전부 28점에 이른다. 대체로 독일 MARKK(구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나 덴마크 코펜하겐박물관 그림과 일부 유사하고, 그 외에 여러 나라의 기산 그림과 유사성이 있다. 다른 지역의 기산 풍속화와 비교해 구도에 있어 좌우, 인물 숫자, 일부 행위가 바뀌는 정도이다. 그런데 일부 눈에 띄는 작품도 있다. <실 뽑고 베틀짜기> <원본 화제 이하 동일>(도판번호 대체!)는 독일, 프랑스, 러시아 소장품을 종합한 형태로서, 다른 지역 것보다 다채로우며, <신부 신행>(도판번호 대체!)은 덴마크, 독일 소장품과 유사하나, 가마 지붕에 호피가 없고, 좌우에 2인의 후행 인물이 추가된 것이 특이하다. <실타레 만들기>(도판번호로 대체!)는 덴마크 소장품과 유사하나, 인물이 더 많고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 이번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덴마크 국립코펜하겐박물관, 오스트리아 비엔나박물관, 러시아 국립모스크바동양박물관, 캐나다에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풍속화로 만나는 18세기 조선
조선시대에는 다른 어느 때 보다 풍속화가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특히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풍속화가 가장 융성하게 발달하였다. 풍속화는 기준을 좁은 의미로는 궁궐이 아닌 민간의 생활상을 다룬 그림으로 한정하여 사인 풍속도(士人風俗圖)와 서민 풍속도(庶民風俗圖)로 나눌 수 있다.
사인 풍속도는 사대부의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수렵도, 계회도, 시회도, 평생도 등의 주제로 유행하였다면 서민 풍속도는 일반 백성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다룬 것으로, 풍속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궁중에서도 임금이 정치의 참고 자료로 삼기 위하여 서민 풍속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여인들의 생활이나 자태를 그린 미인도(美人圖)도 서민 풍속도에 속한다. 미인도는 원래 궁중 여인들을 그린 사녀도(仕女圖)에서 연원한 것으로 조선 후기에는 기생을 비롯한 신분이 낮은 여인들을 화폭에 담았다.
이번 첫 화에서는 기산의 풍속화 가운데 생업과 관련된 풍속화를 소개해 본다.
농업
상업
수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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