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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미술

국립현대미술관 수채화 소장품만 모아 첫 단독 장르로 전시 《수채: 물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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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마을, 1951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

- 완결성과 완전성을 갖춘 하나의 단독 장르로서 수채화의 특수성에 주목

-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우리나라 대표 작가 등 총 34인의 작가, 총 100여 작품 소개

 

 

[서울문화인] 물의 농도로 그림을 그리는 회화의 장르를 동양에서는 과거 수묵화, 서양에서는 수채화(水彩畵, watercolor painting)라고 한다. 동양의 수묵화도 이제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안료의 등장으로 통상적으로 서양의 수채화와 구분이 힘들다.

 

흔히 수채화는 누구나 학창시절 한 번쯤 배웠을 정도로 익숙하다. 과슈와 아크릴 물감도 수채화 물감의 일종이지만 기본적으로 물이라는 재료의 특성으로 다른 장르에 비해 표현 방법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수채화는 여전히 습작 또는 드로잉과 같이 유화 작품을 위한 전 단계이거나 아직 숙련되지 않은 시기의 창작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다양성, 개념미술이 뿌리내린 미술계에서 현대미술에서는 수채화는 회화 장르에서도 가장 저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만큼 현대미술관에서는 단독으로 이 장르를 소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321(),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는 수채화라는 장르에 한정하여 전시수채: 물을 그리다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수채화만 모아 단독 장르로 구성한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 50년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전시이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정재임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 대해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인 수채화가 여전히 습작 또는 드로잉과 같이 유화 작품을 위한 전 단계이거나 아직 숙련되지 않은 시기의 창작물로 여겨져 왔음에 주목하고, 수채화만이 지닌 특성을 조망하여 독립적이고 완전성 있는 장르로서 정립하고자 마련되었다. 특히 다양한 수채의 용법적 설명보다는 수채화의 가장 특징적인 속성인 물의 특징에 근거한 스며들기, 번지기, 투명성 같은 수채화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수채화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 세계를 보여준 이인성, 서동진, 서진달, 배동신의 작품은 물론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등 잘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 미술가의 수채 작품과 박서보, 이두식 등 다른 장르에서 알려진 화가들의 수채화와 아울러 수채화를 방법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주력 매체적 특성을 그대로 발현하고 있는 류인, 문신 등 우리나라 미술가 34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수채화는 근대기 초 서양화의 도입으로부터 그 출발을 알렸고 새로운 매체와 함께 새로운 시각성의 도입이 발현되었다. 전시는 근대기 최초 서양화를 도입한 작가들의 발자취부터 추상적 형태로 나타난 수채화까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근대기 최초 서양화를 도입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서양화 도입 초기 수채의 등장은 외부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릴 수 있는 사생이 중심이었다. 최초 수채화 전시회(1923년 대구미술전람회는 대구에서 최초 서양화가 포함된 최초의 전람회)를 열었던 서동진은 발달된 대구의 시가지를 그렸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로 입선한 손일봉은 풍경과 정물을 소재로 한 서양화를 선보였다. 불투명 수채화 기법뿐 아니라 수채화 내에서 후기 인상주의적 표현을 모두 지닌 이인성은 우리나라 화단 내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한 만능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상징주의적 상상력으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냈던 이중섭은 동양화의 몰골법을 수채 물감의 농담에 적용하여 간결하면서 힘 있는 필치로 대상을 표현했다.

 

수채화의 1세대로 일컬어지는 대표 작가(구본웅, 김수명, 박명조, 박수근, 서동진, 서진달, 손일봉, 이경희, 이인성, 이중섭, 장욱진, 전선택)들과 그 전통을 통해 이어 온 근대기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중섭의 수채화 작품

 

이중섭의 수채화 작품

 

이중섭의 수채화 작품

 

박수근, 구본웅, 서진달 작

 

박수근 작

 

위) 서동진 작, 아래) 전선택, 손일봉 작

 

이경희 작

 

 

2부에서는 국내 미술세계가 점차 유화 중심으로 새로운 매체의 바람과 함께 이동함에 따라 전통적 양식의 수채화는 수채화의 양식적 기법 훈련과 일률적 교육에 묻혀 독창성을 잃어버리고 고답화되거나 기교화되었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론과 함께 발현되었던 작품을 선보인다. 이곳에서는 사생을 중점에 둔 자연환경의 묘사뿐만 아니라 내적 성찰과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수채화 매체를 사용한 작가들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전상수는 대상을 사생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략과 과장을 조율하며 실제 풍경을 추상화했고, 류인이 지닌 존재와 시대의 불안은 야수파 같은 강렬한 색채에 반영되었다. 김명숙의 고통과 현실은 붓질의 날선 형태를 통해 표현주의적 전통 안에서 시각화되었으며 김종하의 과감하고 리듬감 있는 색의 음률은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준다. 이들은 강연균의 극사실주의적이고 정교한 묘사와 함께 다양하게 관찰된다.

 

2부에 소개되는 작가(강요배, 강연균, 강환섭, 김명숙, 김종하, 류인, 문신, 배동신, 유강열, 이두식, 전상수, 전현선, 정기호, 정상복)들은 표현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같은 미술사적 형태와 형상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이면서도 수채의 투명하고 번지는 형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종하, 바다의 여인과 물고기, 1973

 

김종하, 바다의 환희, 1977

 

강환섭, 의식의 계단, 1975

 

이두식, 생의 기원, 1978

 

김명숙, 무제, 1988

 

유강열 작, 1950년대 초

 

 

마지막으로는 추상적 형태의 수채화로 곽인식, 김기린, 김정자, 박서보, 양수아, 윤종숙, 장발, 정영렬 등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일찍 지정학적 위치를 부여받은 단색화 경향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70년대 중반 등장한 단색화 경향은 국내 화단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형식과 재료 면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각 지역의 조건과 특수성 안에서 조금씩 다른 양상으로 등장했던 추상 열풍은 작가들을 통해 세계미술과 공명할 수 있는 타당성을 주었다.

 

 

곽인식, 무제, 1980년대

 

박서보, 묘법 No 355-86, 1986

 

 

전체 화면을 색으로 덮는 올 오버 구도의 장발 작품, 물감이 번지고 흘리는 방법을 통해 화면 전체를 색의 감각으로 채운 김정자의 색면회화, 수채와 한지의 투명하고 비치는 성질을 사용하여 겹친 꽃잎을 표현한 곽인식과 긁고 미는 방식으로 물성을 극대화한 박서보의 검은 화면은 물질과 물질의 만남을 표면에 드러냄으로써 사물의 존재성을 나타낸다. 우리 화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단색화 경향의 작품군은 수채화의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미국 추상주의와 유럽 대륙에서 활발하게 이행됐던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 그리고 물성을 강조하는 모노하 형식의 작품은 단색의 화면을 구성하면서 명상적이고 수행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외에도 전시장 도입부에는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윤종숙 작가의 현장 제작 벽화가 설치되었으며, 이번 전시와 연계하여 2층 보이는 수장고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수채 소장품 중 최근 작품으로 수채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대표 현대 미술가 전현선의 작품 <나란히 걷는 낮과 밤>이 전시되고 있다. 15폭으로 구성된 이 대형 회화는 관람자에 따라 조합을 바꾸어 가며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시는 97()까지 진행된다

 

 

윤종숙, 아산, 2025, 벽화_ 정재임 학예연구사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017 – 2018, 캔버스에 수채 물감, 112×145.5cm

 

로비_ 아카이브 자료

 

 

 

이중섭, 물놀이하는 아이들, 1941, 종이에 펜, 수채 물감, 14x9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의 가난과 고통은 그만의 독특한 방식의 작업을 야기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은지화와 엽서화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중섭은 매번 사랑하는 가족, 부인 마사코와 아들 태성, 태현을 위해 작은 그림을 그려 간단한 문장과 함께 대한해협에 실어 보냈다. <물놀이하는 아이들>에서 선보인 물줄기는 두께감 있는 크라프트지 위에 검정 펜으로 드로잉하고, 글씨가 마르기도 전에 연한 하늘색 수채 물감만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구사하였다. 펜과 수채물감이 만나는 곳이 마치 물속에서 흐트러지는 손발처럼 부드럽게 일그러지는 효과를 자연스럽게 가져온다. 강한 필치의 대담한 필선은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속도감 있는 그의 작품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인성 , < 계산동 성당 >, 1930 년대 ,  종이에 수채 물감 , 34.5×44 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인성은 수채 화단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서동진이 설립한 대구미술사(大邱美術史)에 입사한 후 16세인 1928년 개벽사(開闢社) 주최의 세계아동예술전람회에서 <촌락의 풍경>을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한 것이 그 시작이다. 그는 이후로도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를 출품해 입상하였다. 1931년 일본으로 건너가 그 당시 주요 화단이었던 일본수채화회에 소속되어 일본수채화전(1935) 에서 최고상을 받는 등 일본에서도 그의 남다른 수채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당시 일본 근대화단은 일본적 양화를 추구함에 따라 전통 소재나 정취의 복기가 답습되고 있었고, 이것은 국내 화단에도 적용되어 이인성 역시 우리 고유의 경치와 정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중 <계산동 성당>은 대구에 위치한 천주교 성당으로, 1902년 영남 최초 고딕식으로 건축된 성당이다. 현재 대구 중구 서성로에 위치하여 동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배동신 , < 누드 >, 1983,  종이에 수채 물감 ,  연필 , 54.5×74.5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수채 화단이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 화단을 그 시작으로 본다면, 호남 지역에는 독자적 화풍을 지닌 배동신 작가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의 정서는 기름보다는 물이라고 언급하며 수채화만을 작업했다. 그는 대상을 본질적으로 탐구하기 위하여 똑같은 대상을 반복적으로 그린다. 대표적 소재는 무등산, 정물, 누드로 그의 작품 전반에는 박수근, 문학수, 이중섭 등과 교류하며 얻은 양식적 유사성이 드러난다. 세부적 묘사를 생략한 대담한 구도와 현실적이면서도 소박한 표현은 맑고 투명함을 강조하는 그의 능숙한 수채 기법과 함께 독특한 양식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류인 ,  〈 무제 〉 , 1996,  종이에 수채 물감 ,  연필 , 104×86.5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류인은 신체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인간 고통의 본질과 자유를 향한 갈구를 모색한 표현주의 조각가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조각의 특성을 그대로 평면 작품으로 옮겨 보여준다. 작품 <무제>는 수채화임에도 조각가 류인이 지닌 강렬한 힘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실존주의적 주제가 잘 드러난다. 선과 악, 존엄과 소외 등 인간의 본원적 속성에 관한 반성 외에도 류인은 군사정권 시기 사회와 제도를 억압한 강제적인 무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시대와 역사의 무게를 잊지 않았다. 그의 작품 내면에 흐르는 삶의 역동으로서 의지는 예술이 지니는 사회적 소명을 동시에 드러낸다.

 

 

박서보 , < 묘법  No.355-86 〉 , 1986,  캔버스 ,  종이에 수채 물감 , 194×300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박서보의 <묘법>은 세 가지 시기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연필을 사용해 수없이 반복되는 선을 그은 연필 묘법, 1980년대 닥종이를 재발견하게 되면서 긁고 밀어 올리는 방식의 지그재그 묘법,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형 화면을 분할하여 직선으로 동일한 간격을 유지하며 선을 만든 색채 묘법이 그 세 번째이다. 이 작품은 그의 중기 묘법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여 수성 물감으로 흠뻑 젖은 한지 위에 손가락이나 뾰족한 나무 등으로 긁으며 표면에 요철을 만들어 단색의 평면에 촉각성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