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ZKMFC) 공동 극사실주의(Hyperrealism) 현대 조각 거장 론 뮤익 회고전
- 30여 년 시기별 주요 조각 작품과 스튜디오 사진 연작, 다큐멘터리 필름 등 24점 소개
[서울문화인]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이 4월 11일부터 서울관에서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C,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과 공동주최로 현대 조각의 세계적 거장 《론 뮤익》전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그의 창작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 작품 10점과 함께 스튜디오 사진 연작과 다큐멘터리 필름 두 편 등 총 24점을 소개하고 있다.
세밀한 묘사나 표현력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는 윤두서의 자화상이 마치 입체적으로 살아나 전시장으로 걸어 나온 듯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윤두서의 자화상이 단순 터럭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조선시대에 그려진 자화상 중에서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외적인 표현보다도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그의 정신세계, 자신의 내면과 인생철학을 담아내 표현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 론 뮤익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하이퍼 리얼리즘(Hyper realism)이라 불리는 극사실주의 조각가는 국내에는 최수앙 작가가 떠올려지며 해외 작가로는 샘 징크(Sam Jinks)도 떠올려진다. 이들 작가 역시 단순 티테일로 사물에 생명을 부여한 것이 아니다. 론 뮤익 역시 조각적 테크닉과 표현력 속에도 인간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사유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론 뮤익(1958년생, 멜버른, 오스트레일리아)은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분야에서 마네킹과 소품을 제작하던 그는 1996년, 작가 폴라 레고(Paula Rego)의 의뢰로 조각 <피노키오>를 만들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1년 후 <죽은 아버지>(1996–97)가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 전시에서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1년에는 <소년>(1999)이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다.
론 뮤익(b.1958)은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나 본인의 특기를 살려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특출난 작가로 영화 특수효과 및 특수분장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에서 작은 크기에 이르기까기 주로 나신의 조형물을 통해 인간과 그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실제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델로 한 작품 <죽은 아버지(Dead Dad)>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극사실주의는 작가의 개성이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대 미술의 패러다임과 정면으로 배치되기도 하지만 물체를 사실 그대로 그리기 때문에 그림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미술을 감상하는 일반 대중들에겐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점에서는 흥미로운 전시라 할 수 있다.
그럼 론 뮤익의 작품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실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외형을 디테일하게 재현하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은 디테일에만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며 시대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5, 6전시실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을 통해서 선보였던 <나뭇가지를 든 여인>(2009), 침대에 누운 거대한 인물로 가로 6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 <침대에서>(2005), <쇼핑하는 여인>(2013) 3점, 그리고 리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실제 크기의 약 4배되는 작가의 자화상 <마스크 II>(2002)는 이미 조금은 익숙해진 작품들이지만 이외에도 1998년 첫 소개된 수영복을 입은 사춘기 소녀를 표현한 조각상 <유령>(1998/2014)과 그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젊은 연인>(2013), 암탉과 중년의 남성이 마주하여 팽팽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치킨 / 맨>(2019), <배에 탄 남자>(2002), 어둠 속에서 바깥을 응시하고 있는 남성을 표현한 <어두운 장소>(2018), 그리고 이전의 작품과는 차별화된 <매스>(2016–2017)가 전시장 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2017년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의 의뢰로 제작된 <매스>는 백 개의 대형 두개골 형상을 쌓아 올린 작품으로, “Mass”라는 단어는 더미, 무더기, 군중을 의미할 수도 있고, 종교의식을 뜻할 수도 있다. 두개골의 상징성 역시 다층적이다. 미술사에서 두개골은 인간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키지만(메멘토 모리), 동시에 대중문화에서 흔히 등장하며, 고고학적 발견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죽은 자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론 뮤익은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이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매스>는 뮤익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관객을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이려는 그의 열망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6전시실에서는 그동안 잘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창작 과정과 예술가로서의 삶과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블롱드(Gautier Deblonde)의 작업실 사진 연작, 그리고 다큐멘터리 두 편을 선보여 그의 작업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론 뮤익의 작업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 간의 과정으로 완성되다보니 이전의 개인전을 가진 작가들에 비해 많은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는 좀 아쉬움이 있지만 그 만큼 자주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본다. 전시는 7월 13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5,000원이다.
<마스크 II>, 2002, 혼합 재료, 77 × 118 × 85 cm. 개인 소장.
<마스크 II>는 론 뮤익 작품의 중요한 특징인 현실과 비현실의 균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상징적인 자화상으로, 전통적인 장르를 전례 없이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석했다. 두상의 형태는 받침대와 맞닿으며 눌려 있고, 그 효과는 너무나 설득력이 있어 관람객에게는 살짝 열린 입에서 숨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그의 거대한 머리 위 공간에는 생각과 꿈이 떠도는 듯하다. 그러나 작품을 뒤에서 보면, 그것이 가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텅 빈 머리 안쪽을 마주하면 정면에서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느꼈던 실체를 의심하게 된다. 작품의 제목은 단순히 이것이 껍데기라는 사실을 가리키거나, 혹은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내보이되 자의식을 배제한 상태임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혼합 재료, 170 × 183 × 120 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이 여인은 등을 뒤로 젖힌 채 알 수 없는 작업의 무게를 짊어지고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서 있다. 그녀의 자세는 우아한 불규칙성을 지닌 나뭇가지들과 대조를 이루며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부드러운 피부에는 날카롭고 거친 나뭇가지에 긁힌 흔적이 남아 있으며, 얼굴에는 깊은 집중과 주변을 의식하는 듯한 표정이 서려 있다. 의도적으로 작게 제작되어 불안한 기묘함을 자아내며, 물리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비유적인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침대에서>, 2005, 혼합 재료, 162 × 650 × 395 c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침대에서>를 통해 우리는 론 뮤익 작품의 핵심적 특징을 단번에 마주하게 된다.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인물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형태와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 인물의 정신까지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은 마치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처럼 보이며, 그 존재감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오래 머물게 한다.
뮤익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이 조각 역시 실제 크기로 제작되지 않았다. 그는 인물을 항상 과장되게 축소하거나 확대하여 표현하는데, 이는 단순한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주제와 크기의 선택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인물과 함께 이부자리와 베개까지 포함하여 대형 조각이 되었다. 덕분에 관객은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그녀는 마치 우리가 보이지 않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본다.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을 천천히 관찰하며 그녀의 생각을 상상할 수 있고, 동시에 우리의 존재가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치킨 / 맨>, 2019, 혼합 재료, 86 × 140 × 80 cm.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론 뮤익의 모든 작품 중 <치킨 / 맨>은 아마도 가장 분명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데, 정작 어떤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구 배치부터 남성의 신체와 자세, 집중된 시선, 그리고 닭의 경계하는 눈빛과 자세까지, 모든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사람이 한번 움찔하면 닭이 도망갈 게 뻔하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공간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동등한 대결을 앞에 두고 우리는 작품의 두 주인공 중 한쪽의 관점, 혹은 심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누가 먼저 눈을 깜박이고, 누가 먼저 덮칠 것인가? 이것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한 장면, 시간 속에 포착된 순간이다. 시선을 잠시 뗐다가 다시 보면 의자가 뒤집히고 남성은 맥없이 쓰러지고 닭은 깃털만 흩뿌린 채 사라져 버릴 것 같아 감히 한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다. 어쩌면 그 닭은 단지 남성의 편집증이 만들어 낸 환영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들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오래 이 장면을 곱씹을 수 있지만, 이 상황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교하게 조각된 <치킨 / 맨>은 수많은 세부 묘사를 통해 이 기묘한 장면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우리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잊고 그 세계로 끌려 들어가 이 개연성 없는 심리적 대결의 이유를 추측하게 된다.
<유령>, 1998/2004, 혼합 재료, 202 × 65 × 99 cm. 야게오 재단 컬렉션.
<유령>은 론 뮤익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그가 조각가로서 이미 독창적인 비전을 확립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창작 언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 작품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소녀의 신체적 특징은 그녀가 실존하는 특정 인물일 수 있음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사춘기 소녀가 변화하는 몸에 대해 느끼는 어색함과 수줍음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이 감정은 유독 확대된 인물 크기를 통해 더욱 강조되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젊은 연인>, 2013, 혼합 재료, 89 × 43 × 23 cm. 야게오 재단 컬렉션.
<젊은 연인> 속 십 대 연인은 처음에는 다정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을 담은 론 뮤익의 조각이 흔히 그렇듯,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그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남자가 등 뒤로 여자의 팔을 잡고 있는 손의 접촉 방식은 훨씬 더 미묘하고 모호한 감정을 암시한다.
<쇼핑하는 여인>, 2013, 혼합 재료, 113 × 46 × 30 cm.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쇼핑하는 여인>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온 '어머니와 아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일 수 있다. 론 뮤익은 평범한 거리의 한 장면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감성을 포착했다. 여성은 커다란 외투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있다. 두 손은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있어 무게가 손을 파고든다. 이에 반해 아기의 작은 손가락은 간절하게 그녀의 가슴 위에 얹혀 있고, 아기는 여성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듯 올려다본다. 그러나 여성은 생각에 잠겨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공감할 수 있다.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2017년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의 의뢰로 제작된 <매스>는 백 개의 대형 두개골 형상을 쌓아 올린 작품으로, 전시 공간마다 다르게 구성된다. <매스>는 뮤익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관객을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이려는 그의 열망을 보여준다. 일부 두개골의 색감과 세부 표현에서 개별성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 정체성을 파악할 단서는 거의 없으며, 집단으로서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매스>는 대상의 고립된 개별성에 집중했던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다.
<배에 탄 남자>, 2002, 혼합 재료, 159 × 138 × 429 cm. 개인 소장.
<배에 탄 남자>는 특별히 신비로운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팔을 모아 벗은 몸을 간신히 가린 한 남자가 긴 보트의 뱃머리에 앉아, 무언가를 의심하거나 면밀히 살피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미술 평론가 저스틴 페턴에 따르면, 론 뮤익의 작업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이 인물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내면의 세계로 물러서거나 떠내려가는 듯하다." 친밀하면서도 시간을 초월한 분위기를 지닌 이 조각은 깊은 고독감에 싸여 있다. 2013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처음 공개된 <배에 탄 남자>는 뮤익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어두운 장소>, 2018, 혼합 재료, 140 × 90 × 75 cm. ZAMU.
<어두운 장소>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바깥을 응시한다. 론 뮤익의 작품 중에서는 드물게, 관객이 작품과 거리를 두도록 유도하며, 가까이 다가가 세부를 자세히 살피기보다는 감정적 표현에 집중하게 만든다. 관객은 문을 지나 작품 안으로 들어가 이 어두운 공간을 공유하며 대상의 감정 상태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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