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손을 맞잡고 선보이는 최초, 최대 규모의 겸재 정선 특별전
[서울문화인] 우리나라 회화에서 18세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전 회화는 중국의 회화를 답습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시기에 중국 화풍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화풍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 화보(畵譜)의 모방에 그쳤던 문인화(文人畵)는 현재 심사정(1707-1769), 표암 강세황(1713-1791) 등을 거쳐 개성적인 화풍으로 그려지면서 조선 화단의 독특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 조선 회화의 흐름을 주도한 장르는 역시 겸재 정선(1676~1759)으로 대표되는 ‘진경산수화’와 김홍도, 신윤복이 발전시킨 ‘풍속화’일 것이다. 두 장르가 서로 관련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두 장르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사실적인 그림이라는 점이다. 18세기 이후 사실주의 회화는 산수화을 넘어 인물화, 초상화, 화훼초충 및 영모화 등 모든 장르에서 사실주의 화풍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가운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를 이끈 화가로, 전통 회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당시 화단을 주도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관을 개성적인 필치로 그려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정립하여, 당대는 물론 후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들은 이전 관념적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의 경치를 인식하고 그 아름다움을 생생히 담아내며,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진경산수화’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조선 후기 회화의 사상적·미학적 변화를 반영한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호암미술관의 대규모 기획전 《겸재 정선》
호암미술관이 겸재 정선을 주제로 개최된 전시로는 사상 최대 165점(국보 2건, 보물 7건 57점, 부산시유형문화재 1건)의 겸재 정선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았다.
사실 우리나라 회화를 보여주는 전시에서 겸재의 작품은 대체로 몇 점 밖에 볼 수 없다. 그럼 겸재의 작품이 희소해서 그럴까? 그것은 아니다. 이번에 소개되는 165점도 결코 적지 않은 수량이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겸재의 작품으로 보면 아주 작은 수량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165점 가운데 정선의 지정 작품 12건(국보 2건, 보물 10건) 중 8건이 최초로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가 역대 최대 규모로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창립 60주년, 2026년 정선 탄생 35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영우)과 함께 진행하는 전시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한번쯤 만날 수 있었던 호암미술관, 간송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겸재의 작품은 물론 그동안 보기가 어려웠던 개인의 소장품을 비롯하여 총 18개 기관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품 수량을 넘어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아닌 생소했던 작품까지 출품되어 예상을 뛰어넘는 전시라 평하고 싶다.
이번 전시는 정선의 대표작인 진경산수화는 물론 사대부의 정취를 보여주는 관념산수화, 옛 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고사인물화, 화조영모화, 초충도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성취한 정선의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조망하여 보여줌으로써 그가 살았던 시대와 조선 후기 회화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시는 총 1, 2부로 나눠 1부(진경에 거닐다)에서는 정선을 대표하는 진경산수화의 흐름을 조명하고 있다. 특히 다양하게 변주해 온 금강산과 정선이 나고 자랐던 한양 일대를 그린 작품을 통해 정선 진경산수화의 시작과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금강산은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시작된 장소이자 일생에 걸쳐 가장 많은 작품으로 남긴 장소이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금강산 유람은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다. 많은 문인과 지식인들은 금강산을 여행하고 그 경험을 기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소장하거나 감상하는 와유(臥遊) 문화가 발달했다.
정선은 1711년에 처음으로 금강산을 여행한 후 『신묘년풍악도첩』을 제작했다. 이후 여러 차례 금강산을 방문하며 화풍을 발전시켰고, 대표작인 〈금강전도〉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정선은 금강산과 관동 일대의 다양한 명승지를 화폭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해당 장소의 기세와 경물을 생략하거나 과장하는 등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하게 되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남종화풍의 토대 위에 본인의 독특한 개성을 더하여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금강산 지역 외에도 정선은 다른 지역의 명승지도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특히 서울지역을 많이 그렸다. 이는 정선이 북악산 자락인 유란동(幽蘭洞)에서 나고 자랐고, 양천현령으로 근무하는 등 서울과 그 근교에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정선을 후원하는 사람들도 수도 한양에 살던 경화세족(京華世族)이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정선의 한양 진경은 크게 그가 살던 북악산 및 인왕산 일대와 양천현령 시절 그린 한강 일대와 서울의 서쪽 지역을 묘사한 작품들로 나뉜다. 『경교명승첩』은 그가 서울과 한강 주변의 명소를 진경산수화로 정리한 대표적인 화첩이다. 그는 단순히 경치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의 역사적·문화적 의미까지 담아내며 지역성과 개인적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나 다른 화목(畵目)에도 정통했다. 특히 조선 후기 문인화풍의 산수화를 유행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는 정선의 집안적 내력과 관련이 있다 할 수 있다. 정선은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증조부 이후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하며 본인의 대에 이르러서는 한미한 가문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정선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정선의 문인의식은 작품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2부(문인화가의 이상)에서는 정선하면 떠오르는 진경산수화 외에도 문인화, 화조화, 초충도 등 정선이 그린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통해 정선의 예술 세계 전모는 물론, 그가 가지고 있던 문인의식과 집안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그리던 때에도 중국 문인화가들의 남종화 필법을 익히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진경산수화를 그릴 때에도 남종화의 다양한 화풍을 차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귀거래사 (歸去來辭)」 등과 같은 문인들의 즐겨 읽던 시를 그림으로 그린 시의도(詩意圖)들을 빈번히 제작하고, 오랜 벗 사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주고받는 ‘시거화래지약(詩去畵來之約)’을 통해 이병연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등 문인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을 다수 남겼다.




특히 이곳에서는 산수화나 인물화 외에도 다람쥐나 쥐, 개구리, 풀벌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도 정선은 자세한 관찰을 통해 털 하나에 이르기까지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화면 전체에는 정선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진경산수화와 다른 기복(祈福)과 관련된 그림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 가운데 소나무 그림이 대표적이다. 정선은 소나무를 군자의 상징 외에도 장수를 상징하는 ‘수(壽)’자 모양으로 형상화하는 등 길상적인 의미를 담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정선이 개척한 진경 화풍은 김윤겸, 김응환 등 ‘정선파’라 불리는 화가들에 의해 계속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이인상, 김홍도 등이 이어받아 자신의 개성을 담은 새로운 진경산수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없었다면 이들의 작품도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정선이 이룩한 진경산수화풍은 이후 민화와 지도와 같은 전혀 다른 장르에서도 꾸준히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는 정선의 여러 소품들을 모아 병풍으로 만들어 감상했던 백납병(百衲屛)도 전하는 등 정선의 예술세계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현대에까지 추앙받았음을 보여준다.
앞서 밝혔지만 특히 이번 전시가 한국의 양대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협력하여 더욱 의미가 크다. 이에 6월 29일(일)까지 호암미술관에서 진행된 이후, 2026년 하반기에는 대구간송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서 전시되어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정선의 대표작들이 지역 주민들에게도 향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의 협력을 통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대규모 《겸재 정선》전이 성사되었다. 이번 전시는 마치 장대한 금강산을 한 폭에 담아내 듯, 정선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시기간 중 강연과 함께 매일 오후 2시, 4시에는 전시 설명 도슨트(50분)가 진행된다. 전시는 현장발권도 가능하지만 전시장 혼잡 시 현장발권은 대기 시간 발생하니 호암미술관 홈페이지(www.leeumhoam.org)에서 관람 2주전부터 사전예약이 가능하다. 관람요금은 14,000원이다. 또한, 호암미술관은 리움~호암미술관 무료 셔틀버스(화~금요일, 日 2회, 호암미술관 홈페이지 사전 예약)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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